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다시 읽고 영화를 본다. 이 중 세 가지의 단편에서 영화의 소재를 가져왔다. 첨엔 영화 화면이 어색하지만 어느새 젖어들어 3시간 동안 그 안으로 들어간다. 주인공 가후쿠의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거나, 실제로 그 모습을 보게 된다거나 외도의 상대를 가후쿠가 만나게 된다거나 하는 사건은 자극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 같으면 외도를 아는 순간 싸움이 시작되며 극은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것이다. 그러나 가후쿠는 지금의 상태, 지금의 아내를 잃을까 봐 모든 것을 덮고 그 위에서 위험하게 사는 것을 택한다. 어느 쪽이 고통이 더 클지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두 번 살지 못하므로.
빨간색 사브 안에서 죽은 아내와 사귀었던 다까스키는 가후쿠에게 말한다.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겠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의 한계를 이야기하기보다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이야기한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연극 대사도 매력적이다(안톤 체홉의 ‘바냐아저씨’).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있어도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라고 한다. 보상이나 좋은 결과는 기대할 수 없다. 다만 생을 마쳤을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고통을 위로받는 수밖에.
영화를 보는 동안 내가 빨간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연극연습장면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수어까지 섞어가며 이루어지는데, 어쩌면 우리가 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선다.
수어를 하는 한국여배우가 등장하면 영화 속과 밖이 침묵 속에서 폭발하고, 집중하며 듣게 된다. 소음 속에서 모두 얕아질 때 침묵 속에서 깊어진 것이다.
운전기사의 말없는 드라이빙과 수어배우의 침묵이 어느새 우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가 하루키의 작품을 더 풍성하게 해주었다. 기쁘고 벅찬 영화였다.
✎권사 오진이 (독서팀장, 6여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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