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2026-06-25 07:51:37
박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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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수기 6:25)

 

성경에서, 그리고 기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길 원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모른다. 예수님의 얼굴도 분명하지 않은데, 하나님의 얼굴은 오죽할까. 그런데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그래서 우리가 봤는지 보지 못했는지 알 수도 없는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는 왜 보기를 원한다고 고백할까. 이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말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얼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굴을 통해서 그 사람의 국적, 성별, 직업, 성향, 나이, 그리고 현재의 감정, 생각, 심지어는 인생의 굴곡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까지도 알아낸다. 그리고 반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의 얼굴도 그려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실제 사실과 같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사람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보고 듣고 경험한대로 완성되지 않고 우리의 뇌가 만들어낸 수 많은 생각 틀에 의해 완성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만큼만 알 수 있다. 그것을 계시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계시를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기도 중에 우리에게 불현듯 찾아오는 마음과 깨달음 정도로 여긴다. 이는 편협한 이해이지만, 이마저도 생각해보자면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적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 자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주신 사건이다. 하나님의 육체적 얼굴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상당히 선명하게 드러내주신 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일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선입견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우리도 충분히 그들과 같아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전적으로 봐야 하고, 성경을 넓게 공부해야 한다. 그럴 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된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보았다고 하여도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알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만난 인간 예수조차도 우리의 생각의 틀 안에서 이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눈으로 볼 수 있는 인간에 대한 보이는 이해의 폭이 커질 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더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중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작은 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작은 자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은 단순히 선행을 위한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고 넓게 아는 실제적인 길을 제시한 것이다.

 

영화 얼굴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태어나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만드는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에게 경찰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40년 전 실종된 아내이자 어머니 정영희의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것. 얼굴조차 몰랐던 어머니가 살해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임동환은 아버지 임영규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PD ‘김수진과 함께 어머니의 죽음을 추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40년 전 어머니와 함께 청계천 의류 공장에서 일했던 이들의 기억을 통해 가려진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정영희의 얼굴은 실제로 어떻게 생겼을까를 끊임없이 상상하게 된다. 특히 정영희에 대한 첫번째 평가이자 갈등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못생겼다는 사람들의 평가는, 우리에게 그녀가 정말 못생겼을까 아니면 생각보다 예쁠까라는 질문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는 그녀가 경험한 삶에 대한 문제의식, 그녀의 느꼈을 감정에 대한 공감을 뒷전으로 밀어버린다. 영화의 절정에서 시각장애인 임영규가 행한 일을 우리도 할 수 있고, 우리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결국 나 또한 그렇게 바라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 스스로가 이를 깨닫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목사 전민성(중고등푸른교회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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