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계의 주인>은 주인공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길 바라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스포일러를 남기지 않도록 권장하는 영화입니다. 이에 따라 ‘핵심’ 내용은 서술하지 않았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은 영화를 왜? 감상하시나요?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 주변의 호평을 듣고 영화가 궁금해져서,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등등 영화를 보는 이유는 다양한 것 같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이유는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한정적이며 단편적이기에 나와 다른 사람의 상황과 생각을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럴 때 영화는 타인의 시선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창구가 됩니다.
반장, 모범생, 학교 인싸인 동시에 연애가 가장 큰 관심사인 열여덟 살 ‘이주인’의 삶 또한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삶입니다. 영화 속 다른 인물들도 ‘주인’이의 삶을 살지 않았기에 본인만의 기준과 시선으로 ‘주인’이의 삶을 판단하고 정의합니다.
어느 날, 같은 반 친구 ‘수호’가 제안한 서명운동에 전교생이 동참하던 중 오직 ‘주인’만이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며 나 홀로 서명을 거부합니다. 주인이의 거절이 거듭되자 다른 친구들은 ‘주인’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수호’가 제안한 서명운동의 내용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 ‘주인’은 장난기 많고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 종잡을 수 없는 여자친구, 친구 같은 딸, 엄하면서 다정한 누나, 착실한 제자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주인’은 어린 시절 당한 폭력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는 희생자입니다. 그 사실을 몰랐던 이들은 자신이 아는, 자신이 판단한 ‘주인’이 전부라고 생각했기에 서명운동에 반대한 ‘주인’을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본 것입니다.
오해가 쌓이고 갈등이 지속되자 결국 ‘주인’은 자신의 상처와 피해를 사람들에게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주인’은 명랑한 열여덟의 고등학생으로 자신의 일상을 묵묵히 살아갑니다. 그것이 ‘주인’이 살아가는 방법이자, 희생과 상처로부터 회복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즉, ‘주인’은 자신이라는 세계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주인’의 평범한 모습을 보고 폭력의 피해자임에도 멀쩡한(?) 삶을 사는 게 이상하다고 여깁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피해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꿋꿋이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동일한 폭력의 희생자들과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 가족과 진솔한 이야기를 하며, 친구와의 관계 회복을 통하여 안온한 일상을 되찾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화는 폭력을 경험한 ‘주인’의 일상을 보여주며 ‘희생자는 ~~할거야’라는 편견을 깨트려줍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을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사람은 ~~해야 해.’ ‘쟤는 저렇게 행동하니 ~~사람이야.’ 너무 쉽게 나의 기준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고 단정 지어버리는 건 아닐까요. 또한 다양한 사건의 희생자들에게 ‘희생자다움’을 강요하진 않았는지요.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희생자다움’이 나타나지 않는 이들의 상처를 쉽게 판단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영화는 관객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폭력의 희생자를 마주할 때, 특별히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은 섣부른 판단과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곁을 지켜주는 것, 함께 울어주는 것이 아닐까요? ‘주인’이가 자신의 세계에서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곁을 지켜준 영화 속 다양한 인물들처럼, 세상 속 다양한 이들에게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전도사 박진범(교육부, 틈새포플러스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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