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어 수업
2026-06-25 07:46:39
박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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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나치의 유태인 학살(홀로코스트)를 상황적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참 많다. 이 영화도 그 중에 하나이다. 사실, 홀로코스트가 벌어진 이유는 독일의 우월의식과 피해의식으로부터 시작된 혐오. 어떤 죄를 지었거나, 빼앗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어서도 아니다. 게르만 민족의 인종적 우월성과 자신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원인을 유태인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다. 그리고 그 주체가 당시 힘을 가진 강자였고 대상은 힘이 없는 약자였기에, 혐오를 바탕으로 한 인간 학살이 너무도 쉽게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홀로코스트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는 특별한 상황을 부여하지 않아도, 등장인물만으로도 엄청난 긴장과 공포를 유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긴장 구도에 진실이 밝혀지면 큰 일 날 거짓말이라는 요소를 더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계속해서 조마조마하게 만들어 간다.

 

이야기는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 북부에서 출발한다. 집결수용소로 체포한 유태인들을 싣고 가는 트럭 안에서 ''은 굶주림을 호소하던 옆 사람에게 샌드위치를 나눠준다. 그 대가로 질은 페르시아어로 쓰인 책을 건네받는다. 별 생각 없이 그저 비싼 책이라기에 챙겨뒀던 게 그의 목숨을 건지게 해준다. 트럭이 숲에서 멈춘 후 강제로 내리게 된 다른 유태인들이 느닷없이 학살되는 중에 질은 자신이 페르시아 인이라 필사적으로 주장한다. 살아남기 위해 꾀를 부린다며 독일군인들은 그를 처형하려 하지만 그중 누군가는 마침 수용소의 코흐 대위가 페르시아 인을 찾는다는 소식을 기억해낸다. 대위가 건 포상을 탐낸 병사들은 그를 일단 살려서 데려간다.

 

수용소 주방과 수용자명부를 관리하는 전직 요리사 코흐 대위는 이 전쟁이 끝나면 동생이 사는 페르시아(이란)로 이주해 독일음식 식당을 차리려는 꿈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쟁 와중에 페르시아어를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던 참이다. 코흐는 자신이 페르시아 인이라 자처하는 질이 못내 의심스럽긴 하지만 일단 과외수업을 받기로 한다.

 

주방에서 하루 종일 일한 뒤 매일 4개씩 단어를 가르쳐야하는 질은 이제 목숨을 건 거짓말을 하루하루 이어가야 할 팔자다. 이제 질은 필사적으로 신조 언어를 창조해야만 한다. 탄로가 나는 순간 죽임 당할 게 분명하니까. 살아남기 위해 질은 주변의 사물 이름을 변조해 자신만의 단어 목록을 만들어나간다. 하지만 이내 벽에 부딪힌다. 들통이 날 위기에 처한 그는 처음엔 수용자 명부에 자신이 기록하던 명단에 실린 이름을 변조해, 그 다음으로는 배식을 하면서 동료 수용자들의 이름을 묻는 식으로 소재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런 곡절을 거치며 질과 코흐 단 둘만이 아는 가짜 페르시아어가 탄생한다. 이 조마조마한 목숨을 건 사기극의 결말은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기를 바란다.

 

페르시아어는 질에게 있어서 생명을 부여해주는 관계성이다. 코흐 대위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바램을 위한 소유물이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를 뛰어넘어 내가 지향하는 바를 보여준다. 내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내가 하는 말을 듣는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신앙과 언어도 연결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느껴지도록 말하고 있을까, 아니면 내 욕망이 드러나도록 말하고 있을까. 상대방을 배려한 말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하기 편한 말로 하고 있을까.

 

영화 속에서 질이 수용자들의 이름으로 가짜 페르시아어 단어를 만들 때, 떠오른 구절이 있다. “주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그 사람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그 사람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셨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창세기1:19) 하나님께서 이름을 지을 줄 모르셨던 것도 아니었고, 사람이 모든 동물 중에서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다른 피조물과 어떻게 관계하려 하는가를 유의 깊게 보신다는 것이 아닐까?

 

한줄 평 말과 펜은 총보다 강하다.

명 대사 이름이 없을 뿐이죠. 왜냐하면 대위님은 그들의 이름을 모르니까요.”

 

목사 전민성(중고등푸른교회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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