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
2026-06-25 07:39:03
박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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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에 우리집에 팬티엄컴퓨터가 들어온 적이 있다. 검은 것은 바탕이고 흰색은 글씨였던 도스(MS-DOS)를 가지고 열심히 자판을 두들기던 경험이, 마우스라는 도구를 가지고 아기자기한 아이콘을 클릭하여서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경험으로 대전환되던 때였다. 그 때, 컴퓨터로 영상을 재생할 수 있고, 스피커를 통해 스테레오의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보라는 듯이 컴퓨터와 함께 비매품으로 딸려 들어온 영화 CD 두 장이 있었다. 하나는 클리퍼행어’(1993)였고, 또 다른 하나는 쇼생크탈출이었다. 물론, 당시는 나이가 어렸던 터라 자유롭게 볼 수도 없었고, 부모님 입회하에 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에서 돈을 놓고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영화인 클리프행어처럼, ‘쇼생크 탈출은 감옥을 들키지 않고 탈옥하는 내용의 액션영화로 여겼었다. 마치, ‘프리즌 브레이크’(2017)처럼 말이다. 그래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탈옥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 긴박한 탈옥의 과정, 탈옥 후 그가 누린 생활을 주로 다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영화의 재미를 반감하고 지루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 때는 내가 철이 없었지. 아니, 어쩌면 이 좋은 영화에게 붙은 컴퓨터 비매품이라는 스티커가 영화를 더 저평가하게 만들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실제로도 당시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수상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고 하니, 어쩌면 여전히 포레스트 검프’(1994)는 봤어도 이 영화는 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명작은 볼 때마다 새롭다. 내가 성장해갈수록, 아니 내가 인생 속에 절여져 갈수록 탈옥이 아니라 다른 장면과 다른 말들이 더 인상 깊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감옥 옥상에서 정당하게 누리는 맥주 두병,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죄수가 감옥 안에 도서관을 만든 일, 삭막한 감옥 생활 안에 울려 퍼지는 음악의 힘(특별히, 가요가 아니라 피가로의 결혼이라는 오페라, 클래식의 힘), 인생을 달관했을 것 같은 노인이 가석방되어 나옴으로 느끼는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는 주인공인 듀프레인이 자기 부인에게 가졌을 감정의 변화까지 내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장항준 감독은 한 장면도 버릴 것이 없는, 한 장면이라도 빠지면 모든 감정이 100% 전달될 수 없는 영화라며 평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나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아직 못 본 분들이 있다면, 아니 봤던 분들도 다시 한 번 보면 어떨까 싶다. 그러보니 이번 글을 쓰면서 또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었다. 포스터에 이런 카피가 적혀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두려움은 너를 죄수로 가두고,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영화의 핵심은 감옥을 탈출한 죄수가 아니다. ‘자유이다. 감옥에 있다고 해서 자유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감옥 밖에 있다고 해서 자유한 것이 아니다. 이는 비단, 죄수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많은 물리적 공간, 무형의 공동체 속에서 억압, 속박, 답답함을 경험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오죽하면 도망가자’(노래:선우정아)라는 노래가 현대인들의 공감을 자아내겠는가. 정말 도망이 답일까? 그리고 도망 갈 수는 있을까? 쇼생크 탈출은 우리에게 자유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죄수라는 신분 때문에 감옥에 갇혀있는 이들처럼,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갇힘을 경험하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질문해보자. 우리는 정녕 무엇에 갇혀있고, 어떻게 자유해질 수 있을까? ‘인생속에 갇힌 우리가 참으로 누려야할 자유, 그 자유를 진심으로 소망하게 될 때, ‘죄인을 의인으로 부르시는 예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줄 평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명 대사 기억해요. 레드. 희망은 좋은 거예요. 어쩌면 제일 좋은걸지도 몰라요그리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목사 전민성(중고등푸른교회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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